환단고기 역주본 추천사

이찬구 박사(철학박사,고대사 연구가)

 

 

 

 

 

 

 

한민족을 위해 역사의 신이 내려준 선물

 

 

 

숱한 전란으로 고대 사서가 소실당하고,

사대주의와 식민지 권력으로 인해 고대사 관련 문헌들이

수거당해온 참혹한 역사학의 현실 속에서 1백여 년 전

계연수 선생에 의해 비로소 전수된 원본 [환단고기]는

역사의 신이 숨겨 놓았다가 마지막으로 한민족을 위해 내려준 선물일 수밖에 없다

 

 

지난 30년 동안 민족사의 현장을 누비며 고증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이를 보완해 줄 수많은 사진들과

참고문헌을 곁들여 엮은 안경전선생의[환단고기 역주본]은

단순한 번역 이상의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자료수집 등

그 규모의 방대함에서도 원본 발간 이래 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생방송에서 강의중인 이찬구박사님

 

 

 

 

 

[환단고기]가 처음 발간된 1백여년 전은 일제의 식민사학이

한민족사의 뿌리를 도려내기 위해 열심히 칼을 갈고 있던

때인만큼 이 책이 지닌 가치는 말로 형용할수 없을 정도로

지대한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특징과 가치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첫째, [환단고기]는 단절되어 사라질 뻔한 한민족의 국통맥을

가장 정확하게 전해주고 있다는 데에 가장 큰 가치를 지닌다.

일제가 고조선-위만조선-한사군으로 한민족사를 왜곡하고

있을 때, 환국-배달-고조선-북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국통맥을 의연히 바로잡아 주었던 것이다.

 

특히 배달과 고조선의 국통맥이 부자관계처럼 단대로 끝나는

가족사가 아니고 배달국을 18대 환웅천왕이 계계승승 다스리고, 고조선도 47대 단군이 2천여년을 나누어 통치했다는 사실을

일일이 밝혀줌으로써 단군이 한 사람의 신화이야기라는

식민사학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혁파해 주고 있다.

 

아울러 고조선과 고구려 사이에서 그 자리가 애매하였던

부여사의 진면목을 밝혀주고 있다는 데도 의의가 크다.

 

 

 

 

 

 

 

 

 

 

둘째, [환단고기]는 오늘날의 교과서들이 말하고 있는

"고조선이 서기 전 108년에 한무제에게 멸망당하였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등에는 한나라 유철이

'조선을 평정하고 4군을 두었다'라고 적고 있다.

 

이 기록에서의 조선은 단군의 고조선이 아니라,

고조선의 서쪽 변방인 난하 유역에 남아있던 위만 세력이

점령한 변방의 조선현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교과서에서 고조선의 멸망 연대를 위만이 멸망한

서기전 108년으로 착각한 것은 번조선의 변방을 지키던 위만이 마치 고조선의 전체를 지배한 진조선의 대단군으로

잘못 생각한 인식의 원초적 오류에서 온것이다.

 

[환단고기]는 사기의 잘못된 조선관을 비판하고 있으며

위만을 도적으로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부여가 이 도적의 무리인 한사군을 도리어 격파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환단고기가 말하고 있는 고조선의 삼조선 체계를

바로 알면 고조선의 중심체인 진조선은 한나라 유철에게

평정당한 것이 아니라 북부여를 일으킨 해모수에게

계승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수 있는 것이다.

 

 

 

 

 

 

 

 

 

 

 

셋째, 환단고기는 고구려 광개토호태왕릉비에 나오는

도해파의 의미가 불분명하여 생긴 오해를 말끔히 씻어주고 있다. 일제가 사까와 탁본을 가져다가 이를

"일본이 바다를 건너가 백제와 신라를 파하고 신민을 삼았다"로

해석하여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퍼뜨려왔다

 

그러나 환단고기에는 "도해소지 격파왜인"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광개토호태왕이 바다를 건너 이르는 곳마다 왜적을

격파했다는 뜻으로 광개토호태왕 비문이 지닌

'도해파'의 뜻을 정확하게 밝혀줌으로써 임마일본부설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너무도 잘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고증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긴하지만 이상과 같은 몇가지 사실만을 보더라도

우리는 환단고기의 환단고기 역주본으로 인하여

우리 자신의 힘으로 우리 자신의역사를 가진 민족이 되었다고

자부할수 있게 되었고, 동북아와 세계무대에서

우리 자신의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무한대의 자산을

확보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우리 한민족이 되찾은

이 무한대의 자산을 역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기초로 삼아

연구하고, 여기에 현대 한국인의 지혜와 창조력을 보태어

인류 정신문화의 향상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때라고

감히 생각하는 것이다.

 

 

 

 

 

 

 

 

 

환단고기 북콘서트는

서울 대전 부산 대구 인천 창원 일산 경남

국회 독일 미국 일본등에서 열렸어요.

그중 몇개지역 동영상을 올립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유튜브 영상

 

 

◈서울편
1부 https://youtu.be/tPuXkqw1KT4
2부 https://youtu.be/kFW2fMgAOb0

 

◈일산편
1부 https://youtu.be/jvPhd4flaOQ
2부 https://youtu.be/yvPrncsfKNU

 

◈국회편
1부 https://youtu.be/xsrTiRaJ6mY
2부 https://youtu.be/-ewHYhaFkiU

 

 

◈창원편
https://youtu.be/YTfZ-aI-4EY

 

◈미국편
1부 https://youtu.be/0WzokPKP8b4
2부 https://youtu.be/HiHjLTVT7ZM
3부 https://youtu.be/l7yzWYgQmQ4

 

◈독일편
1부  https://youtu.be/zZv_IGwex-s
2부 https://youtu.be/XtsKSv7XBN0

 

◈일본 편
1부 https://youtu.be/pixudJtx2Vo
2부 https://youtu.be/URhPZKAz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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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생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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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환단고기북콘서트 요약2

 

환단고기 완역본을 역주하신 안경전 종도사님께서

강화 환단고기북콘서트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요약정리한것입니다

 

 

 

 

 

 

 

 

 

동방 천자의 나라, 단군조선조의 사는 2,096년이고

마흔일곱분 단군이 다스렸습니다.

단군조선 이전에는 열여덟 분 환웅천황이 1,565년 동안 다스린

신시 배달이었고 배달이전에는 환국 열두나라시대,

일곱분의 환인이 3,301년을 다스린 무병장수 문명 시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한민족과 인류 황금시절의 원형문화시대 ,

7천년역사문화 시대를 송두리째 다 잃어버리고

고조선은 완전히 신화의 역사로 부정을 당하는

역사 인식의 절망의 시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단군왕검은 신교의 삼신문화, 신의 우주 창조법칙인 3수 원리로 국가를 경영하고 통치하여 진정한 왕도문화를 세운 분입니다.

단군왕검의 국가 경영의 기본 시스템은 삼신우주관을 바탕으로 한 3수 원리로 영토를 셋으로 나눈 것입니다.

 

 저 만주가 진한(중기 이후에 진조선)으로

수도는 하얼빈 아사달이고,

한반도 전체가 마한으로 수도는 평양 백야강이고,

그 다음에 요서 지역이 번한으로 수도는 안덕향,

바로 지난번에 대지진이 일어났던 당신이에요.

 

이것이 삼조선으로 수도 셋, 삼경입니다.

삼한의 수도는 저울대 저울추 저울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신관의 정신을 상징하는 단군조선의 세수도

삼경의 균형이 지속되면 나라가 강성해지고 번영이 계속되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역대 단군 중 초대 단군왕검은 팔조 조칙과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을 축조했고,

3세 가륵단군은 가림토문자를 창제했으며,

11세 도해단군은 대시전을 건축하고 [염표문]을

창제 반포했습니다.

22세 색불루 단구부터 제2왕조 시대인데 도읍을

송화강 아사달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옮기고

나라를 삼한에서 삼조선 체제로 바꿨으며,

고조선의 금팔조법을 선호하여 국가 경영의 법 체계가

정립됐습니다.

43세 물리 단군 때 일어난 우화충의 대반란을 평정하고 즉위한

44세 구물 단군은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부여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부여의 기원입니다

마지막 47세 고열가 단군이 오가의 족장들에게 국권을 넘기고서 산으로 들어가신 후 6년 공화정 시대를 거쳐

해모수의 북부여가 단군조선을 계승하게 됩니다

 

 

 

 

 

강화 환단고기북콘서트 말씀요약

 

 

 

 

단군조선의 문화 업적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첫째, 환국 배달의 천지광명 역사관,인간관,신관,우주관을 정리한 홍익인간의 광명의 도, 우주광명의 심법을 만세홍범 사상으로,

생활수칙 문화로 정비해 주셨습니다

 

둘째, 환국 배달을 계승한 역법으로

배달국 14대 치우천황의 스승인 자부선사가 완성한

칠화제신력이 완성되었습니다.

 

셋째, 단군조의 인류 문화사적 위대한 업적은

바로 우주 이법으로 한글의 근원이 되는 가림토 38자를

만든 것입니다.

이 문자 창제의 바탕 원리는 [환단고기]의 우주 창세이법을

상징하는 삼신오제 사상입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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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생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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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역주본 추천사-홍윤기교수

환단고기는 온 인류의 보물

 

 

 

 

 

 

 

홍윤기/국제 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석좌교수

 

 

 

 

 

 

 

환단고기 완역본 발간은 진심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더욱이 한글자 한글자 그 참뜻을 밝혀낸 것은 물론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정신까지도 심도 깊게 밝혀낸

30년 노작이란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삼성기를 비롯하여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한데 엮은

환단고기는 한민족 고대사가 집결된 귀중한 문헌입니다.

 

뿐만아니라 9천년 전 인류의 시원문화를 밝혀주는 성전입니다.

환단고기는 한국을 넘어 인류 모두의 보물입니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올바른 역사교육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의 이웃나라들이 역사왜곡의 만행을 자행하고

심지어 남의 나라땅을 자신들의 땅이라고우겨대는

작금은 상황에서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한국인 모두의 필독서입니다 .

일본은 환단고기를 이루는 다섯 사서를 비롯한 우리의 옛 사서를 탈취해 왕실의 비밀 서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 구메구니다케의 행적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구니다케는 19세기 후반 일본 왕가의 서고에서

역사서를 정리하는일을 하다가 도쿄 국제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한일 고대사에 관해 발표한 한편의 눈문이 학계는 물론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하늘의 천신을 받드는 일본 왕실의 신도가

고조선의 천신 제사에서 유래하였다.'

는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같이 과감한 주장을 할수 있었을까요?

서고의 관리자로서 조선에서 건너온 고문헌을 섭렵하면서

일본  문화의 뿌리가 조선이라는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입니다

 

한 학자의 양심적인 연구에서도 알수 있듯이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고대 역사까지 바로세울 길잡이가

바로 환단고기입니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웅대한 한국사와 오늘의 인류에게 던지는

고귀한 메시지가 한민족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합니다.

 

 

 

환단고기 역주본 추천사/홍윤기 교수

 

 

 

 

 

 

 

 

 

 

 

인류 창세역사와 한민족 9천년사의

국통맥을 바로세운다!!

 

 

인류 원형 문화인 '삼신三神문화' 시대의 종교,

정치,우주관,인간론,통치원리,

언어,음악,건축등 고대문화 전수 비밀을

동북아 삼국(한중일)의 관계속에서

총체적으로 밝히는 유일한 인류 창세역사 원전

 

 

 

 

 


Posted by 상생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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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의 성지 강화,강화환단고기 북콘서트

 

 

 

 

 

 

 

 

조금전 박성수 이사장님의 말씀이

'이 강화도는 작은 한국이다. 강화도의 역사 문화를 모르고 한국을 말하지 말라.' 라고 하셨는데 , 참 멋있는 표현이에요

 

오늘 이 시간은 우리 모두 함께 천지 역사 문화의 중심축을 굳게 세우고, 동북아를 넘어 인류 창세 역사의 혼백과 원형문화와 푯대정신이 굳건히 살아있는 마리산 참성단을 다 함께 그려보면서 무너진 대한민국 역사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제 정면으로 보이는 플래카드에

'강화, 한민족 창세 역사 광복의 성지다.'라고 쓰여 있는데 너무도 멋진데요. 다함께 한번 큰 박수를 치면서 오늘 말씀의 서두를 시작할까 합니다.

지구촌을 여기 저기 다녀 보았지만 이곳 강하 주민들의박수에서 공동체 의식이 가장 크게 터져 나오는것같아요

 

 

 

 

 

 

 

 

 

 

결론은 역사 전쟁입니다 문화주권전재입니다 역사관 전쟁입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역사관 전댕인것입니다 우리는 다 같은한국인으로서 나아가 지구촌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왜 우리 역사의 근원을 반드시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역사를 잃는 자는 모든것을 잃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잃으면 현재 삶의 진정한 주에 주인이 될수 없고 미래 새역사의 비전을 당당하게 제기할수 없습니다 과거 역사는 단순히 가거에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오늘 현재 나의 삶의 의식을 결정짓고 미래 역사를 여는 모든 사람의 동력원이 되는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강단히 살펴보면 강화도와 인천은 고대사와 근대사를 아우르는 진정한역사의성지입니다. 이곳은 조선의 시조 단군왕검이 마리산 참성단을 쌓고 우주의 통치자 우주정치의주관자이신 삼신상제님께 직접 천제를 올리신 곳입니다

그래서 강화도는 한민족 역사의 성지를 넘어 진정한 인류문화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서두에서 주장하고 싶습니다

강화도는 생동하는 제천문화의 추억이 그대로 살아있는 성지인 것입니다

 

며칠 전 강화도 환단고기 콘서트에 무엇을 주제로 삼아야 일관되게 우리 역사의 근원을 복원하고 우리역사의 새로운 비전 희망의 한 소식을 제대로 전할수 있을지 고민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왜 청춘의 시간을 다 바쳐서 위 역사 광복의 어두움을 걷는데 봉사를 했는가?' 하고 자문도 해보았어요

평생동안 나도 모르게 환인천제 환웅천황 단군왕검 치우천황님께 순간순간 기도를 했는데 그렇게 청수 떠놓고 기도하는 삶이 있었기에 오늘 이런 자리가 마련되고 우리가 만나게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살펴볼 것은 단군조선의 삼신문화 삼신상제님 제천문화 제천단과 그에 대한 구체적은 의식에 관한것입니다

이것은 믿을수 없는 신화가 아니라 너무도 강력한 충격을 받지 않을수 없는 실제 역사입니다

바로 그 역사 현장 강화도에서 우리는 2천년 단군조선 왕조 문화의 살아있는 증거를 보면서 북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Posted by 상생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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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이 국보 1호가 된 이유

(남대문이 국보1호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배웠던

수없이 많은 내용이 있지만

이중에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국보 1호가 남대문이라는 것일것입니다.

 

국보1호가 남대문이라는 것을 외우면서

왜 국보 1호가 남대문이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나름 생각하기를 남대문이

그만큼 잘 만들어져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기에

국보1호로 지정이 되었나보다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알게 되었는데

남대문이 국보 1호로 지정이 된데에는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비단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대문이 원래는

숭례문이었다는 것은 다 아실텐데요.

어떻게 하여 숭례문이 남대문으로 바뀌었고

또 국보1호가 되었는지 진실을 알아봅니다.

 

 

 

 

 

 

 

때는 임진왜란(1592~1596년) 당시 해전과 육전에서

승승장구한던 왜장 가토 기요마사는

수도인 한앙까지 쳐들어왔습니다.

그 때 기요마사는 숭례문을 통해 입성하여

도성을 파괴하고 수많은 백성을 살상했습니다

 

그후 300여년이 지난 19세기에

일본은 또다시 한반도를 유린하고

1910년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통치하면서

문화재를 파괴하거나 강탈해 가는

못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면서 숭례문을 비롯한 도성의 4대문이

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없애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조선에 들어와 있던

당시 일본인 거류민장이 이를 만류하며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숭례문을 통해

한양에 입성했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여

숭례문을 개선문으로 삼아야 한다'

 

고 했고 그래서 일제 총독부는 숭례문을 훼손하지 않고

숭례문을 단순히 방위만을 나타내는

'남대문'으로 격하시켜

조선고적 1호로 지정합니다(1934년)

 

 

 

 

 

 

 

 

그렇게 시간이 흘러 광복을 하게 되었고

광복후 대한민국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시행하면서 일제에 의해 지정된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맙니다.

 

이리하여 침략자의 입성을 기념한 남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하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국보 1호는 이처럼 치욕의 역사가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정해진 것을 바꾸거나

고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 못된 것은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바꾸고 바르게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후손에게만은 바른 역사를

가르칠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지금 이것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의 후손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똑같이 잘못된 역사를 배우게 될것입니다.

 

 

출처 한민족과 증산도

 

 

 

남대문 국보 1호,남대문이 국보1호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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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생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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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는 배달문화

 

 

 

 

홍산문화라는 단어가 좀 생소한분들도 계실텐데요.

홍산은 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시의 동북방에 위치한

산 이름이에요. 토양에 철 성분이 많아 멀리서 보면

산이 붉게 보이는데 그래서 홍산문화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아주 오래된 문명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적,유물들이 이곳 홍산에서 대거 발견되어

발굴되었습니다

 

 

 

 

 

 

 

1908년 처음 홍산 일대 유적과 유물을 발견한 이는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이고 이어 1919년 프랑스 고고학자 에밀 리쌍도

이 일대에서 신석기시대 유적 여러곳을 찾아냈습니다.

 

1935년 일본인들이 동아시아 고족조사단을 만들어 홍상일대를 본격 발굴하면서 여기서 출토된 것들을 통틀어 '홍산후 유적'이라 명명했습니다.

 

중국 역사학계가 이곳을 조사한 것은 한참 뒤인 1980년대입니다 이때 중국 학자들에 의해 홍산문화 유적이 발견된 곳은

중국 내몽골자치구 동남부 요령성 서부와하북성 북부 길림성 서부 등인데 계속되는 발굴을 통해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홍산문화가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것은 1983년 요령성 건평현 우하량 유적지가 발견된 이후 입니다. 여기서는 신전과 제단 돌무덤 등이 한꺼번에 발굴되었습니다. 또 홍산인의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여신상, 곰과 새의 소조상을 비롯 다양한 옥기들이 나왔습니다. 우하량 유적은 중국 고고학에서 가장 중대한 발견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홍산에서 나온 유적은 식석기 유적들만 나온것이 아닙니다

적봉시에서도 하가점이라는 마을에서 청동기 유물이 나왔습니다

특히 단군조선의 지표 유물이라 할 수 있는 비파형 동검도 발견되었습니다. 홍산문화가 고조선과 연관 됐다는 사실이 입증된것입니다

 

이곳에는 상층과 하층 2개로 구분돼 유물들이 발견됐는데 하층 유물의 연도는 기원절 2000~1500년으로 추산됩니다

상층으로 올라올수록 더욱 발전된 청동기 문화의 자취들이 등장합니다.

 

 

 

 

<홍산문화와 Y벨트>

 

 

지난 20C초 이래 한민족의 고토인 요서(요하의 서쪽) 지역에서 BCE 7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가 발굴되고 있다

 

요서 일대의 이 고대 문명은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의 '붉은 산'인 홍산에서 이름을 따서 넓은 의미의 홍산문화로 불린다. 좁은 의미의 홍산문화는 요령성의 건평현과 능원현 경계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는 신석기 말기 문명을 가리킨다

 

BCE 3500년을 기점으로 만리장성 밖의 홍산문화와 북방 초원문화가 황하 중류 만곡부인 오르도스 지역과 태항산 사이의 노선을 따라 중원으로 전파되었다

이 문화 전수 경로를 중국 학자 쑤빙치가 Y벨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Y벨트를 따라 동방 신교의 제천문화와 삼족오, 용봉, 칠성과 같은 천자문화의 상징이 중원에 흘러들어 갔으며, 이것은 중국을 대표하는 신석기 문화인 앙소문화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한마디로 홍산문화는 황하문명의 원류인 것이다.

 

 

 

 

 

 

 

 

 

 

 

 

 

홍산문화의 유적 유물로는

대표적으로 적석총 제천단 여신묘와 다양한 옥기들입니다

 

먼저 적석총을 보면

홍산에서 발견된 적석총이 놀랍게도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구조나 축조 방식이 같습니다. 다른 유물들은 놔두고 이 적석총 하나만 보아도 홍산문화는 동이족 문명이라는 것을 알수 잇습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 역시 그 형태가 우리 한민족과 깊은 연관을 갖습니다

중국학자들은 우하량 제 2지점에서 발견된 원형 제단과 방형 적석총 유적이 동방의 전통적인 천원지방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또 그 구조가 저 북경에 있는 천단의 원형이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원구단도 그와 같은 형태입니다.

 

 

 

 

 

 

 

 

세번째로 주목되는 것은 우하량의 여신묘 유적에서 발견된 실물 크기의 여신상입니다.진흙으로 만든 소조상인데 그 크기나 모습이 오늘날 실제 사람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여신을 숭배했다는 것은 이미 당시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 나아가 우리 고대사의 웅녀. 웅족과의 어떤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홍산문화는 황하문명의 원류

 

세계 4대문명의 하나로 꼽히는 중국의 황하문명은 황하 중하류 지역에 성립한 옛 문명의 총칭입니다. 일반적으로 중국뿐 아니라 한반도를 호함한 동아시앙 문명의 시발점이 황하문명이다. 그렇게 중국인들은 주장해 왔고 또 사람들에게는 대개 그렇게 인식돼 왔습니다

 

그런데 1973년 양자강 하류에서 하모도문화라고 명명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됐습니다.황하문명의 중심지라 할 아소문환권이 기원전 4500~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하모도문화는 그것보다 최소 500~1000년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중국에서는 이를 장강문명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이후 중화문명이 황하에서 출발했다는 단일 기원론이 아니라 황하와 장강 두곳에서 시작됐다는 다기원론을 내놓았습니다

 

그런 터에 다시 1980년대 이후 만리장성 북쪽 요서지방 일대에서 어마어마한 신석기 및 청동기 유적이 발견되고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바로 홍산문화죠. 일부 학자들은 홍산 지역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성격의 유물들이 발해연안 요서, 요동지역에서도 널리 발견되고 있다고 해서 요하문명이라고도 합니다

 

선문대 이형구 교수는 '홍산문화는 우리 동이 한민족 문화의 원형'이라고 말합니다

'지중해 문명이 서양문명이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이 발해연안(발해를 둘러싸고 있는 산동반도,요동반도,한반도)에서 창조한 문명은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내는 젖줄이었다.' 는 겁니다

그러면서 홍산문화를 발해연안문명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분명한것은 홍산문명은 연대적으로 보아 황하문명보다 앞선문명입니다. 그것이 중국으로 유입된 겁니다

저 만리장성 바깥의 동방 홍산문화 그리고 북방 초원문화가 황하 중류의 만곡부인 오르도스 지역과 태항산 사이 루트를 따라 중국 중원으로 들어간겁니다

중국의 고고학자 소병기는 이 문화전달 경로를 Y벨트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즉 홍산문화는 황하문화의 원류인 것입니다

 

 

 

 

 

 

 

 

 

홍산인은 바로 동이족

 

홍산문화가 동방 동이족 그러니까 우리 한민족 조상들이 이룬 문명이라면 오래저부터 황하문명이 최고(最古)라고 주장해온 중국쪽에서는 홍산유적 유물이 반견된것이 곤혹스럽고 당혹스러울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까지 중국은 황하 유역의 하나라에서 중국 문명이 시작돼서 상나라 주나라로 역사가 이어졌다 이렇게 고대사를 설정했습니다. 그런데 홍산문화 특히 우하량 유적이 발견되면서 이런 정설이 무너지게 된 겁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스스로 동방문명의 종주국임을 자부해왔습니다. 그런데 동이족의 영역이던 요령성에서 중원보다 1000~1500년이나 앞선 문명이 그것도 고대국가의 성립요소를 제대로 갖춘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중국 학자들도 발국 결과를 토대로 홍산문화가 황하문명보다 먼저 이루어졌다 홍산문화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요하지역은 주변보다 훨씬 앞서 국가성립의 조건을 가 갖추고 있었다 결론은 내렸습니다. 눈앞에 드러난 유적, 유물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죠

 

결국 홍산문화가 알려지면서 중국은 황하 중심의 문명전파론을 철회하고 대신 다중심 문화발전론을 내놓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고대문화가 세계 최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북공정이니 동북공정이니  하는 역사왜곡 정책처럼 중국은 홍산문화에 대해서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요하문명이 황하문명과는 애초 이질적인데도 그것을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만들어서 홍산문화든 북방 고대민족의 고대사든 모두 중국사로 쓸어 넣겠다는 의도인 것입니다.

 

 

 

 

 

 

 

 

 

 

 

당장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홍산인이 곰을 귀하게 여기고 받드는 곰 토템족이란 것입니다. 홍산 유적지에서는 특히 옥기 장식물이나 가면 등의 곰의 형상이 투영된 유물들이 대거 나옵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 일대가 한민족의 원류인 신석기시대 배달국의 터전이었다. 동시에 곰 토템을 생활화하던 웅족의 생활터였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홍산문화는 곧 동이배달문화였고 그것이 청동시대 단군조선의 생활문화로 죽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추정은 '곰 토템의 웅족이 환국의 후손인 환웅족에 의해 문명화됐다'는 환단고기의 삼성기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하늘과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중시하고 동방의 전통인 3수사상을 반영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단군조선 때 장례법과 동일한 형태인 석묘계의 묘장법도 홍산인들이 동이족임을 드러내 줍니다.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

환단고기(안경전)

 2014년 2월호 월간개벽에서 발취

 

 

 

강화 홍산문명 사진전

 

홍산문명 사진전이 강화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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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가 전하는 인류의 시원문명

 

 

 

 

 

 

인류의 시원문명 환국(桓國)

 

 

*통치기간 : 3301년

*통치자 호칭 : 환인

*통치자 : 1세 안파견(거발환)환인

              2세 혁서 환인

              3세 고시리 환인

              4세 주우양 환인

              5세 석제임 환인

              6세 구을리 환린

              7세 지위리 환인

 

*구환족 12 분국(비리국,양운국,구막한국,구다천국,일군국,우루국,객현한국,구모액국,매구여국,사납아국,선비국,수밀이국)

 

 

 

-환국은 영역이 천산(파내류산)을 중심으로 시베리아 지역에까지 이르렀으며, 모두 아홉족속이 열두 나라를 세웠다.

 

-환은 광명을 뜻하며 온전한 하나됨이며 광명이다.

 

 

 

 

 

 

 

 

 

환국은 질병과 전쟁이 없던 황금시대였다.

 

1세 안파견 환인으로부터 7세 지위리 환인까지 총 3301년동안(BCE197-BCE 3798) 존속했던 환국은 환인 한분이 평균 470여년을 다스릴 정도로 장수문화시대였다

 

-환인이 도를 깨쳐 장생하시니 온 몸에는 병이 없었다(삼성기 하)

-태양은 광명이 모인 곳으로 삼신께서 머무시는 곳이다

 

 

독일의 종교학자 칼바이트는

"먼 옛날은 인간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쓰던 황금시대로 그때 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신과 소통할 수 있었고 죽음을 모르고 질병과 고통이 없는 자유로운 경지에서 살았다."

 

 

영국의 스티브 테일러는

"6천년 전 이전 인간의 마음은 자아가 분리되지 않고 인간과 인간이 조화되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되어 살았다... 어떤 인류 집단도 다른 집단의 영토를 침략하거나 정복하려 들지 않았으며 소유물을 훔치려 하지도 않았다."

 

 

 

*환국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삼신의 광명을 체득하고 삼신상제님의 지혜와 권능과 숨결을 일상속에서 느끼며 천지자연에 순응해서 살았기 때문에 질병도 전쟁도 없이 장수문화를 누릴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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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는 지구의 혈

혈중의 혈자리가 태전이다

 

 

증산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밝혀주신

한반도의 혈(穴) 

 

 

 

 

 

 

 

 

왜 남조선의 태전(太田)이 인류구원의 성지(聖地)가 되는가?

 

 

"세상만사가 다 순(順)해야 하지만 지리만은 역(逆)해야 한다.

그래야 작은 혈자리라도 하나 생기는 것인데

이 이치를 세상 사람들 가운데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 5백년의 도읍터였던 한양(서울)을 보라. 서울의 지세를 보면 북악산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그 가지가 인왕산으로 뻗어 그 줄기를 타고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을 거쳐 저 앞쪽으로 남산이 치켜 올라갔다.

그런데 서울 장안의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모두 청계천으로 모여들어서 저 중랑천으로 거꾸로 치 올라간다(역한다)

 

그리고 북한강 남한강의 물이 양수리에서 합해져서 한양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흘러내리다가 이 거꾸로 치솟은 물과 만나서 성 밖 저쪽 반대편으로 빠져 나간다

이처럼 한양 장안의 물이 역(逆)하는 것을 그냥 봤을 때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일러주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서울이 도읍터 자리 하나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역을 했다

지리적으로 볼때 그렇게 되어야 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역하며 치올라간 물줄기의 거리가 채 몇 킬로도 안 된다. 요렇게 좁아터진 터(지기)를 가지고도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했다

 

 

 

 

 

 

 

 

그러면 태전이 어떻게 생겼느냐?

무주 진안 쪽으로부터 추풍령으로부터 물이 거꾸로 올라온다

그물이 금강 쪽으로 거꾸로 치오른다

내가 이것을 얘기해 주기 전에는 아무리 봐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듣고 나서 보면 정녕 물이 거꾸로 오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물이 저 공주 고마나루까지 기어올라갔다가는 저 장항 군산 쪽으로 그냥 내려간다

이렇게 우리 나라 중심부의 반을 역했다

 

여기 태전이 후천 5만년의 세계통일국가가 형성되는 자리가 되느라고 이렇게 된것이다. 서울 터하고 비교를 해봐라,

서울 터는 손바닥만한데 여기는 그 몇백 배다

 

그래서 지리학상으로 지구의 혈이 우리나라 한반도이고 한반도 중에서도 태전이다

이 따 여기가 지구의 혈이다

 

그것은 본래 천지가 형성될때부터 그렇게 되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된것이고, 제3변 도운이 태전에서 매듭짓게 되는 것이다."

 

 

 

지구의 혈 태전

 

 

 

 

우리나라 지기가 좋다는 것을 안 사람은 이등박문이다

일제시대때 이등박문은 우리나라 산천을 둘러보고 지기가 좋은 곳에 쇠 말뚝을 받아 지기를 끊어 놓았다

특히 태전에 와보구 그 지기가 너무 좋다는 것을 알고는 태전을 대전이라 지명을 바꿔버렸다.

대(大)와(太) 둘다 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태와 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큰대는 유한한 큼을 얘기하는 것이고 클태자는 무한한 큼을 뜻한다.

이걸 안 이등박문은 지명까지 바꿔가며 우리의 지기를 꺽으려 했던 것이다

 

잃어버린 태전 지명을 찾고자 1992년 태전지명찾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었다

대전 시민의 4분의 3이 뜨겁게 호응을 했지만 일부 관료들과 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태전으로의 지명 개정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문의 및 소책자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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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상제님의 무극세상을 선포한 천부경

 

 

 

 

 

천부경은 9천년전에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오신다. 무극 세상이 온다'는 것을 선언했다 [천부경] 첫 구절에 나오는 다섯 글자, '일시무시일'은  이 우주는 일태극으로 음양의 도로 열렸는데 그 바탕이 뭐냐? 무극이다 라는 것이다.

 

'무시일' 무에서 비롯된 하나다. 또 마지막 구절, 일종무종일은 하나에서 마무리 되는데 가을철 무극의 운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부경은 태극경전이고, 하나님의 강세를 선언한 경전이다. 상제님의 무극 세상이 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얘기들이 많이 있는데 이제 지구촌 사람들이 이걸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인류문화의 청째 경전, 하나님의 최초의 계시록 천부경 하나만 가지고서도 사람을 많이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일시무시일 석삼극무진본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아, 하늘도 하나님, 땅도 하나님, 인간도 하나님이구나

천일 여기에는 하늘은 모든 우주 생명의 근원이다 라는 뜻도 있다. 이 우주를 꽉 채운 하나님의 조화 생명을 1로 표현한 거야 . 주역을 보면 그걸 암호로 그러면서 양획을 하나 딱 그였어. 이것은 우주의 순수 생명, 하나님 아버지의 순수 생명을 나타낸 거야

 

지이는 무슨 뜻이냐? 지구의 생명선은 음이라는 것이다,

지구 어머니는 하늘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서 그걸 끌어안고 만물을 낳아 기르는 것이다.

이런 음적인 생명의 본성을 선을 갈라서 둘이 나오고 둘에서 넷, 사상이 나온다. 태양과 소음 소양과 태음이 나온다.

 

말씀을 정리하면 환국 초기에 나온 진리의 원본 천부경을 배달국 초기 환웅천황의 아드님이 평생을 읽고서 상제님으로부터 도통을 받고 하도를 그렸다, 그 하도에서 인류 문명이 다 나온것이다

 

서양의 과학문명도 컴퓨터 문명도 전부 하도에서 나온거다. 지금 0과 1이라고 하는 커퓨터 언어도 전부 하도 낙서에서 나왔다.

 

 

 

 

 

천부경- 상제님의 무극세상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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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나그네 전설>

 

 

 

수원나그네는

'누구인지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낮이 익고 아는 사람이라'

라는 뜻이 들어있다

 

수원나그네전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정조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화산의 융능으로 자주 행차를 했다고 한다. 어느날 미복 차림으로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안녕리(수원)으로 잠행을 하게 되었다.

 

길을 가다가 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농부를 만나게 된다.

정조대왕은 농부가 사도세자 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 물어보게 된다.

농부는 사도세자의 능을 보고 '뒤주대왕 애기능'이라고 했다.

그 뜻을 물으니 임금이 될 분인데 임금이 되지 못하고 뒤주에 갇혀 죽었으니 뒤주대왕이라 한것이고 애기능이라 한것은 임금의 산소를 능이라 하는데 왕이 되지 못하고 죽었으니 애기능이라고 부른것이라 답을 했다.

 

 

 

 

 

 

 

정조대왕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사도세자를 추존하고 싶어했으나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 못하고 있었던 차에 농부에게 이런 얘기를 들으니 조금이나마 한이 풀리는 듯 했던것이다.

 

정조대왕은 농부가 너무 고마워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농부는 책도 많이 읽고 과거시험도 여러번 보았다고 한다. 실력이 있는는데 번번히 낙방을 했다는 것이었다. 정조대왕은 농부에게 다시한번 과거 시험을 보라한다. 하지만 농부는 또 떨어질거라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 참 설득끝에 농부가 과거시험을 볼 것이라는 답을 받고 정조는 환궁하였고 곧 과거 시험을 보라고 영을 내린다

과거 시험을 보러간 농부가 시제를 보니 융능근처에서 한 선비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적으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농부만이 아는 얘기이니 농부가 과거에 급제한것은 당연지사.

과거 급제후  왕을 배알하던중 알고보니 그 때 만났던 선비가 바로 임금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 전설은 지금은 누구인지 모르고 편하게 대하다가 나중에 다시 보시 평범하지 않은 큰 인물이었다는 내용이다.

 

 

 

 

수원나그네 같은 그런분이 지금 우리 곁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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