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상생방송 인문학 강좌

초대합니다~

 

 

 

 

 

 

 

 

 

서울지역 경당 인문학 강좌 개설되어

관심있는 분들 초대합니다~
상생방송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한

우리역사 찾기 인문학 강좌를 개최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동북아는 지금 첨예한 역사전쟁중입니다.
역사문제는 우리의 생존의 문제이자 미래입니다.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돈만만이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는

밝고 희망찬 미래를 열수가 없습니다.

 

외세에 눈치를 보던 천년이상 찌들은

사대주의 역사관은 우리를 구한말 외세에

지배당하게 되는 비운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유증은 우리 스스로에게 자학사관을 심어주어

식민사관이 판을 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이제라도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왔던

선조들의 9천년 역사 문화정신에 관심을 가지고

정의롭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올바른 역사의식의 회복은

남북이 분열되고 남남이 좌우로 분열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것입니다.

 

나아가 한민족의 위대한 홍익인간 사상은,

각 민족의 문화 장벽을 허물고

인류 미래사회를 화합과 대동세계를 건설하는

주역들을 기를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강남지역 인문학 강좌>

 

*일시 : 4월 12일 26일

        5월 10일  24일
*장소 : 선릉역 4번출구 아이타워 B1 '더모임'

*시간 19:30~21:00

 

 

 

 

 

 

<강북지역 인문학 강좌>

 

*일시: 4월 19일

       5월 3일 17일 31일

*장소 : 서울역 14번 출구 삼경교육센타

*시간 : 19:30~21:00

 

 

 

 

관심있는 분들과 의식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문의 010-3904-2568

 

 

 

 

 

 

 

 

 

 

 

 

Posted by 상생의길
,

 

 

 

인류 최악의 스페인 독감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질병은 무엇일까요?

전염병의 제왕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천연두를 꼽을수 있을거에요.

 

하지만 근대에 가장 빠르게 전염이되어

1차세계대전을 종결하게 만든것이 있으니

1918년에 있었던 스페인독감입니다.

 

 

 

 

 

 

 

 

1918년 봄,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질병이 발생했다.

1년간의 사망자만 놓고 볼 때 1347년의 흑사병보다

더 희생이 컸다는 ‘스페인 독감’이었다.

 ‘스페인 독감’으로 명명된 것은

그 해 5월~6월 스페인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했고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지키고 있던 스페인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질병의 전파를 보다 잘 확인할 수 있었고 검열을 거치지 않은

신빙성있는 뉴스를 통해서 외부에 알려졌기 때문에

마치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하는 것 처럼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독감을 뜻하는 인플루엔자influenza 라는 단어는

18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발병한 독감을 칭하는 말

‘Influenza di freddo’(추위의 영향)에서 유래되었다.

1743년에 이르러 독감은 영국에도 알려졌고

독감의 원인을 장기 또는 별의 영향으로 이해했던

영국 의학계는 독감의 진단명을 ‘영향’이라는 뜻의

‘Influenza’로 채택하게 되었다.

 

 

 

 

 

 

 

비극은 세 차례로 나뉘어 몰려왔다.

첫 파고는 1918년 3월 11일

미국 캔자스주의 미군 부대에서 시작되었다.

한 취사병이 고통을 호소하는가 싶더니 정오 무렵에는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107명으로 늘어났다.

 이틀 후까지 환자는 522명으로 불어났고

이 가운데 48명이 숨졌다.

 

이후 독감은 미 전역으로 퍼져나가

1주일 뒤 조지아주의 군부대에서는

 2만8500여명의 군인 가운데 2900여명이

독감 증세를 보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4월 하순에는 필라델피아 시민 1000명 중 158명이,

볼티모어 시민 1000명 중 148명이 같은 증세를 보였다. 

 

 

 

 

 

 

 

 


그 무렵 독감은 이미 대서양을 건너

1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유럽의 서부전선까지 휩쓸고 있었다.

5월에는 영국, 스칸디나비아, 폴란드까지 덮쳤고

5월말부터는 인도를 초토화시켜

당시 인구의 5%나 되는 1700만명을 쓰러뜨렸다.

 

독감은 전선이든 후방이든 가리지 않았고

소문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6월에는 푸에르토리코,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가 사정권에 들어갔고,

극지방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스페인 독감’은 두가지 점에서 과거와 달랐다.

사망률이 높았고 주로 젊은 남성들이 표적이 되었다. 

 

 

 

 

 

 


1918년 8월 말, 첫 번째 파고보다 더 큰 두 번째 파고가 몰아쳤다.

8월 22일부터 27일 사이에 서로 다른 세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병·유행했다.

프랑스의 브레스토,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

미국의 보스턴이 발병지역이었는데 세 지역은

주로 먼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 늘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브레스토는 유럽 전선에 투입된 79만명의 미군이 도착한 항구였고,

프리타운은 유럽에서 석탄을 실은 증기선이 기항하는 석탄보급지였다.

보스턴은 전쟁물자를 취급하는 많은 회사들로 넘쳐나는 곳이었다.

프리타운에서만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브레스토에서는

8월 22일부터 9월 15일까지 1350명의 군인이 입원해 370명이 숨졌다.

보스턴은 1개월간 시 전체 인구의 10%가 감염되어

이 중 60~70%가 사망했다. 

 

 

 

 

 

 

 

 


1918년 9월부터는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거친 독감이 철로를 따라

미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미 인구의 28%가 감염되었고

67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1차대전으로 죽은 미군 전사자의 10배가 넘는 숫자였다.

이 때문에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10년이나 낮아졌다는 기록도 있다.

교회와 극장은 폐쇄되었고 야외에서 야구경기를 치를 때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독감은 1919년 1월에 세 번째 파고를 일으켜

또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나 이번에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이때 이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3차례의 독감 파고로 세계 인구의 20%가 감염되어

2000만명에서 4000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1918년 스페인독감 관련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GGAHUwupTQ&sns=em

 

 

 

 

 

 

 

 

 

 

 

 

Posted by 상생의길
,

 

 

 

우리나라꽃 무궁화

 

 

 

 

 

 

 

 

 

제가 좋아하는 꽃중 하나가 무궁화에요.

여름서부터 늦가을까지 꽃이 피는 무궁화는

우리 민족만큼이나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대부분의 꽃들은 한번 피었다 지면 끝인데 비해

무궁화는 여름부터 피고지고 또 피고지고를 반복해

늦가을까지 꽃이 피거든요.

꽃을 오랫동안 볼수 있어 좋아요 ㅎㅎ

 

우리나라꽃 무궁화

언제부터 국화로 지정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무궁화는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꽃이 되었어요.

 

 

 

 

 

 

 

 

 

한 나라의 국화에는 역사가 담겨 있는데요

우리나라꽃 무궁화 역시 한미족의 역사와 함께 존재했답니다.

 

기록으로 보면 고조선의 건국 이전인 신시 시대에는

무궁화를 환나라의 꽃인 `환화(桓花)'로 일컬으며

신성한 신단(神壇) 둘레에 심었다고 해요.

환나라는 환국을 말하는 것으로 그때부터

무궁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어요.

 

중국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의 `훈화초' 기록 이후

우리 문헌인 조대기, 단군세기, 단기고사, 규원사화 등에도

나와 있답니다.

 상고사에 등장하는 무궁화는 신라, 고려 때

`근화'라는 이름을 거쳐 일제강점 시절에는

민족의 상징이자 독립에 대한 꿈, 희망이었습니다.

 

 

 

 

 

 

 

 

 

 

제가 어릴적만 하더라고 집집마다 무궁화가

많이 있었던 기억이 나요.

제 기억으로는 학교 울타리에 있는

무궁화 가지 하나를 떼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꽂아 두었는데 이것이 자라서 나중에는

키가 몇 미터나 자랐어요.

 

지금은 그곳에서 이사를 하면서 없어졌겠지만

어린시절 꽃을 따 먹기도 하면서 놀았던 추억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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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생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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