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입도, 내가 있어야 할자리 증산도

 

내가 와야 할 자리에 와서 앉아 있구나
 마산회원도장 이00(53) 성도님의 입도사례입니다.

 

 

 

 

 

상제님 품에 들어오는 입도식을 앞두고 있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50평생 참 멀고도 험한 길을 돌고 돌아서 그 끝에 고향의 부모님 품 안에 안긴 듯합니다.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상제님 신앙을 갓난아기 때부터 지켜보며 자라왔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안방 아랫목에 상제님 어진과

태모 고수부님 진영을 모셔놓은 자리에 청수를 떠 놓고 늘

기도를 하셨습니다.

 

늘 일심으로 평생 상제님을 받들고

또 그 뜻에 따라 진실한 삶을 사신 분이셨기에 저희 자식들은

한결같이 청빈하지만 덕망 높으셨던 아버지를 존경하며

살아왔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신심이 깊으셨던 만큼

아마도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밝혀 주시는 일을 하고

계실 거라는 것을 가족 모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동네에서는 아버지 묘비 앞에 작은 추모비를 세워서

아버지의 삶을 공경하고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우리 9남매는 아버지 자식임을 지금도 자랑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늘 기도하시고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태을주와 운장주를 제 삶의 기본 기도문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고비 고비마다 주문과 기도로써 이겨내곤 했습니다.

늘 말씀해주시던 “척을 짓지 마라, 근본을 알고

조상을 잘 섬겨야 한다, 돈을 탐하지마라, 은혜는 꼭 갚아라,

남에게 기대지 마라” 라는 말씀을 통해서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 집 냉장고에는 붙여놓고 즐겨보는 글이 있는데

‘부모 된 사람들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다. 부모 된 사람들의 가장 큰 지혜로움은

자신들의 삶이 자식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런 삶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부모님 품 안에서 유복하게 유년시절을 별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반대하던 결혼을 하면서부터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결혼 후 천주교 신자인 남편을 따라 성당을 다니며

영세도 받았고 혼배성사도 하였지만,

첫 고해성사 날 밤에 꾸었던 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검은 도복 차림을 한 사람이 꿈에 나타나서 허튼짓 한다며

얼마나 엄하고 혹독하게 꾸짖고 나무라시는지 너무 무서워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 이후로 천주교는 내가 모실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두 번 다시는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당에도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너무 어렵게 시작한 결혼 생활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IMF 때에는 하던 일마저

망해서 풍비박산이 되어 빈털터리로 마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살면서 빚도 청산하고 좀 살만 하니까 나이는 벌써 50줄에 닿았고, 부부의 연이 다하여 이혼의 아픔도 겪었습니다.

 

불행은 연달아서 온다고 하던 말이 있듯이 근래 2년 동안 이혼, 실직, 친정 모친 사망, 병으로 인한 입원과 대수술 또 한 번의

입원으로 건강마저 약해지고 마음도 약해졌습니다.

사람은 아픔을 통해 성숙한다고 하더니 그 힘든 길을 지나오고

나서야 상제님을 모시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정의 셋째 오빠는 오래전부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증산도 신앙생활을 해오셨기 때문에 늘 만날 때마다

상제님을 모시라는 권유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나 오빠처럼 일심으로 신앙생활을 할 자신도 없었고,

그냥 맘속에서 평소처럼 힘들면 주문을 외우고 기도만 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제가 상제님을 모시려고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몸도 마음도 나약해지니까 저한테 신이 들어왔습니다. 여기저기서 신神 바람이 들어왔다고 신을 모시는 무당이 되라고 권하였는데, 차마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평생 맘속에 상제님을 품고 살아왔는데 무당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 길은 자식한테도 떳떳하지 못하고

존경받는 엄마가 될 수 없는 길임을 알기에 마음의 중심을 잡고 친정 오빠에게 의논하여 입도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10년 전 쯤 마산에 내려와 어렵게 살던 시절에 상제님 신앙을 하려고 입문을 하였지만 공부만 조금 하다가 포기하였는데, 이제야 본격적으로 입도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증산도 신앙은 다 때가 되어야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증산도 도장에 무턱대고 찾아가서는 공부하고 싶어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조금은 당혹스러우셨을 포정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그래도 친절히 조력자도 만들어 주시고

친히 입도 교육도 날마다 해주셨습니다.

기도하는 법, 수행하는 법, 공부하는 법을 어린 아기에게 가르쳐 주시 듯 하나에서 열까지 세세히 가르쳐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편안한 맘으로 임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렵기도 하지만 재미도 있었습니다.

우주변화의 원리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후천 5만년 세상을 알게 되고, 진리 공부를 통해 100여 년 전 상제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셔서 천지공사를 펼치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참일꾼 참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도장에 나올 때마다 늘 생각하는 것이 있었는데,

조금은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내가 와야 할 자리에 와서 앉아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고마움이었습니다.

 

 

 

 

 

 

 



삶에 지치고 힘들어 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조상님께서 이 못난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제 자식만은

반듯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고,

험한 세상에서도 상처받은 맘을 잘 다독여 심성을 크게

다치지 않고 거칠지 않게 보살펴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첫걸음 뗄 때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은

욕심에 하나하나 배우고 익히는 데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거의 일 년 동안을 집에서 쉬면서 빈둥거리던 게으름이 습관이 돼버려서 도장에 나와서 공부와 수행을 하는 것이 처음엔 힘들고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늘 곁에서 끈을 놓지 않게 챙겨주시고 함께해주시는 포정님과 조력 성도님의 도움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도전道典 책을 처음 읽던 날 꾸었던 꿈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온몸에서 고름 주머니가 터져 나와 새 이부자리가 흠뻑 젖을 정도로 방안이 온통 고름으로 가득 찼습니다. 너무 놀라서 양동이와 쓰레받기로 고름을 퍼내다가 깼는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 꿈이었습니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수요치성, 일요치성에도 적극 참여하여 정공 수행도 해 보고 도공도 해 보고, 105배례를 통해 지극정성으로 상제님을 받드는 기도도 해 보고, 천도식에 참여하여 봉사활동도 해 보고, 외부에 전단지를 붙이는 포교활동에도 참여해 보면서 많이 배우고 익히고 있습니다.

 

앞으로 상제님의 뜻에 따라 정성껏 신앙하고 공부하여 개벽되는 세상에서 ‘나는 자식으로써는 열매요 부모로써는 씨종자’임을 깊이 깨달아 참 신앙인이 되어 일심으로 상제님의 뜻을 받들고

생활할 수 있기를 늘 염원해봅니다.

너무나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저를 상제님 신앙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상제님과 부모님 전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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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생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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